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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디지털 시대, 돈, 숫자

푸얼럽 2014. 2. 20. 14:36

문명 이전부터도 인간에게 '수'라는 개념은 존재했을 것이다. 수렵생활을 하던 때에도, '5'명의 식구가 토끼 '1'마리씩을 먹으려면 총 '5'마리를 잡아야 된다는 정도의 개념은 있었을 것이고, 벽화에 보면 작대기 선으로 날짜 수를 센다던지 했던 흔적들이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생후 6개월 정도부터 수에 대한 개념이 생긴다고 하니, 수를 헤아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재화의 거래에 '돈'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도 아주 오래전으로, 거의 문명의 시작과 함께라고 볼 수 있다. 생선 10마리로 토끼 1마리를 교환할 수 있다면, 토끼는 생선의 10배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고, 이러한 가치를 희소성 있고 들고다니기 편한 제3의 물질로 계량화 한 것이 '돈'이다. 즉 물건이나 서비스를 '돈'으로 계량화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인류 문명과 역사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돈'으로 매겨지던 물건의 값어지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숫자'로 표현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알파벳, 한글 등의 글자 하나하나가 코드로 변환되어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코드)로 표현되고, 소리의 파장을 숫자로 표현해서 mp3 가 만들어지고, 빛의 반사에 따라 형상화 되던 이미지가 숫자로 바뀌어 jpg 파일이 생성된다.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냄새나 맛도 특정한 센서를 통해 계량되어 숫자로 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의 오감이 숫자로 표현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숫자로 표현 한다는 것은, 보다 명확하고 논리적인 것임에는 틀림 없다. 거리가 '멀다'는 표현 보다는, 거리가 '10km 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명확하게 이해 된다. 수학적,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숫자로 계량화 시킨다는 것은, 보다 많은 것들이 인간에게 명확하게 인식되고, 분석될 수 있기에 '이성'적이 된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감성'은 점점 감퇴되어 가는것은 아닐까.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다는 미술 작품의 '가격'을 더 신경쓰게 된다던지, 클래식 공연에서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봉에 신경을 쓴다던지.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보다는 '몇 마리'나 될까 하는 생각만 한다던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낼 때, 직접적인 교감 보다는 각자의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디지털로 전송되는 '글자'로만 서로를 느낀다던지. 비슷한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디지털 시대, 경쟁의 시대, 돈이 중요한 시대인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도 인간은 항상 부와 명예와 권력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면서 살아 왔다. 하지만 인생의 만족이 거기에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부탄, 경제적으로 풍요하지도 않고, 민주주의조차 확립되지 않은 작은 왕국의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듯이 기술의 발달, 디지털의 발달, 문명의 발달이 반드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행복에는 훨씬 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각각의 변수가 차지하는 비율도 사회마다, 또 각각의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다른사람들이 좇는,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치를 무작정 따라 쫓는것보다는, 내 자신에게 중요한게 무언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나의 가치를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산다면, 무작정 돈 많이 벌고, 좋은 차 타고, 높은 자리에서 권위있게 사는것보다 더 알찬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잘 신경쓰지 않을 만한 가치 중에 최근들어 더욱 소홀해지고 있는 가치 중에 하나는 바로 '아날로그 감성'이 들어간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서로 얼굴보고 마주앉아, 눈빛과 표정이 전달해주는 감정을 서로 공유하는 시간. 핸드폰 문자메시지로를 전달되지 않는 오감, 육감을 느끼는 시간. 잘 가공된 mp3파일에는 담기지 못하는 길거리 밴드의 풋풋하고 어슬픈, 하지만 열정이 담겨져 있는 악기소리나 노래소리. 아무리 고해상도의 컴퓨터 화면이나 TV화면이라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미술관에서 보는 유화의 세밀한 붓 터치.. 

이런 아날로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깊이있게 발견할 수 있다면 내 삶이 조금은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물론 각 개인마다 가치의 크기가 다르기에 누군가는 별로 재미없고 관심없어 할 수 있겠지만, 경험해 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들도 많기에, 한 번 시도해 보는게 나쁘진 않을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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