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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푸얼럽 2014. 7. 8. 11:20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

- 법정스님, '아름다운마무리' 중에서

여행을 하면서 매우 감명깊게 읽었던 책, 아름다운 마무리. 여행 중간에 다른 여행자에게 책을 주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읽고 그랬었는데, 호주에서는 책이 없어 읽을 기회가 없다. 가끔 마음이 어지러울 때 곁에 두고 읽으면 마음 정리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책이 없는게 안타깝다. 그나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몇몇 분들이 몇몇 좋은 구절을 옮겨 놓았다. 그중에 한 블로그.

http://welcomeju.skinwatchers.com.au/xe/index.php?mid=boog_log&document_srl=17532&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


여기서부터는 위 사이트에서 따온 책의 일부 구절들이다. 나름대로 꼭 새겨두고싶은 구절들을 골라서 주제별로 구성해 보았다.

1. 지금

[22]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88] 그러나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145]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단박에 해치울 일도 자꾸만 이다음으로 미루는 타성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그날의 삶이다. 그와 같은 하루하루의 삶이 그를 만들어 간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2. 무소유. 놓아두기. 부.

[33]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도 하나의 ‘정진’일 수 있다.

[57]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71]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123]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3. 함께사는 삶

[56] 이해심. ‘흔히 있는 일인데요’ 라는 이 이해심. 사랑이란 깊은 이해심이다.

[87]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146] 어떤 상황 아래서도 변덕을 부리지 않고 그가 지닌 인품과 인간미를 한결같이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그는 만인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이웃이다. 이런 친구를 가까이 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179]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 너무 가까이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비본질적인 요소들 때문에 그 사람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늘 한데 어울려 치대다보면 범속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받쳐 주어야 신선감을 지속할 수 있다.

[181]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풍경이든 바라보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

[40] 앓게 되면 철이 드는지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180]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흙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듯 자신의 삶을 조심조심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문단을 옮겨본다.

삶의 기술 

-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스승의 대답 

"시간 낭비하지 말라, 네가 숨이 멎어 무덤 속에 들어가거든 그때 가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거라. 왜 지금 삶을 제쳐 두고 죽음에 신경을 쓰는가? 일어날 것은 어차피 일어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은 것들만 배워 왔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 깨어 있음이다. 삶의 기술이란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깨어있는 관심이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지 않고 제자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주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

자비를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나눔의 기쁨을 알 수 없다. 자비를 모르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이웃에게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타인에 대한 적개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어디선가 전해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의 차가 막 교차로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한눈을 파느라고 브레이크를 제때에 밟지 못해 그만 앞차의 뒤를 들이 밟고 말았다. "신혼부부" 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앞차의 범퍼가 살짝 긁힌 가벼운 차사고 였지만 그는 차에서 내려 신혼부부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자 이제 막 결혼식을 끝낸 신랑이 창문을 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흔히 있는 일인데요." 

이해심. '흔히있는 일인데요' 라는 이 이해심, 사랑이란 깊은 이해심이다.

...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사물을 보는 눈도 때에 따라 바뀐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심각할 게 아무것도 없다.

삶은 유희와 같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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